무엇이 사람을 바꾸어 놓는 걸까. 젊은 날의 경험, 세상의 풍파, 원하지 않아도 겪어야 했던 것들이 나를 만들었을까. 주어진 책임이 사람을 짓누른다. 무언가를 해야 해, 무엇이 되어야 해, 그런 것들이 나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나.
세상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를 수없이 시험에 들게 하고 해답은 알려주지 않은 채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힌트를 준다. 때로는 고통이고 때로는 기쁨이다. 그때마다 나는 정신없이 휘둘려가며 견뎌내야만 했다. 한 구절, 한 마디, 한 글자까지 모두 꼼꼼히 해석해내고 난 뒤에야 ‘아,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라고 깨닫는 찰나의 순간이 온다. 사실 해답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힘들게 알아낸 해답 그 자체가 또다시 물음이 되었다. 또 그것을 풀어내야만 했다. 우연이란 없다. 사실은 필연적인 것들. 나는 나로 태어났기에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삶을 끝내지 않을 거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나 삶은 잔인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이라는 것을 먹는다. 숫자가 아닌 진짜 나이를 먹는다. 조금 더 죽음에, 해답에 가까워져 간다. 계속해서 묻고 답하다가 죽게 되겠지. 해답 근처쯤에서야.
인생은 그 무엇도 준비해 놓은 것이 없거나 모든 것을 정해둔 채 나를 맞이한다. 나는 늘 서툴고 부족하다.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만큼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많은 걸 알고 있기에 더 많은 상처를 입고, 너무 많은 짐을 어깨에 졌기에 누군가를 위해 대신 짊어질 수도 없다.
바람이, 아주 길게 불었다. 나는 그 바람을 따라 걸었다.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멈춘 적도 있지만 아주 잠시만 멈추었다가 다시 걸었다. 가끔 걸음을 멈추면 바람이 얼굴에 느껴져 왔다. 계속해서 걸어라, 하는 듯이. 그렇게 계속 걸었다. 지금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잊어버린 채 그저 걸어갈 뿐이다. 이제는 멈추어도 바람이 불어온다. 이렇게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 내 등을 밀어낸다. 이제는 조금 더 빨리 걸어야 한다고 나를 재촉한다. 의무도 자격도 없는 여정. 약속도 기약도 할 수 없는 마음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시간속에 겹겹히 쌓였다. 삶에서 진정으로 충만한 시절은 어느 정도의 비율일까. 이제껏 계획없이 걸어오던 길을 돌아보니, 이젠 내 앞에 보이는 건 겨우 단 두갈래 길 정도뿐. 이 길 끝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만 사람은 완벽해지려 하고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