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봄날, 00님에게
안녕하세요, 봉현입니다.
00님은 잘 지내셨나요?
요즘 어떻게 보내고 있으신가요 :)
2025년의 첫 인사라니.....
그간의 무소식은 게으름이 아니라...
정말 바빴고 또 많은 일이 있었음을... 😂
흐린 눈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려봅니다..
(진짜로 정말입니다)
상황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현재 진행중이랍니다. 🙄
MBTI J형 인간인 저에게
매달 매일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계속 생겨나니
혼란스럽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결국, 할 수 있다, 생각하며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습니다.
또 한번 깨닫지만. 정말...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
한치 앞을 모르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전하는 이야기는, 무려 13년전의 이야기입니다.
다정한 마음으로 들어주시면 너무나 기쁘겠습니다.
/봉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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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나의 첫 책보다 더 멋진 이야기를 쓰는 게 나의 목표다. 하지만 분명 어려울 것이다’ 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여전히 쓰지 못했고, 나는 결국 '내 첫번째 책'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라는 단어를 더해.
그럼에도- 라는 말은 그야말로 나의 삶을 돌아보며 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던가. 나는 스물 다섯살에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났었다. 두번 다시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훌쩍 떠났었다. 이 곳이 싫었다. 사람들끼리 얽히고 설켜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겠다 싶어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날들이 길어졌다. 못생기고, 초라하고, 우울한 내가 부끄러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가도 외로워져서 누군가를 만나면 다시금 허무해졌다. 숨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었다. 모든 걸 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가진 것들이 낡고 초라해보였지만 가난과 외로움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했다.
주위에는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자신이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투성이였다. 우리는 함께 있는 듯했지만, 절대 솔직한 감정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 무엇이 진짜 마음인지 깨닫지 못해서 맴돌 뿐이었다. 늘 불안에 떨면서도 별일 없는 척 웃고 떠드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내가 일하는 카페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잠시나마 외롭지 않다고 느끼려는 사람들이 모여 매일 늦은 밤을 지새우곤 했지만, 아침이 되면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상처를 받는 것도 상처를 주는 것도 익숙해졌다. 상처받는 일이 생겨도 무덤덤했다. 차라리 혼자 있는 시간이 편했다. 사람을 만나서는 그냥 웃어 보이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절할 일은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조용해졌다. 그림도 점점 더 차분해졌다. 말 없는 풍경을 자주 그리게 되었다. 긴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편한 바지를 입고, 딱 맞는 운동화를 신고서 거리를 하염없이 걷고는 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자주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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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았다. 그러나 행복하진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내가 내가 아닌 곳으로. 썩어 문드러져가는 낡은 습관과 끊임없이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와 고민들로부터. 모든 걸 리셋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떠나고 싶었다. 낯선 곳일수록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돌아올 곳이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절벽 끝에 내몰리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디든 무슨 목적이든 상관없었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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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나는 돌아왔다.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며 떠났었으니, 이건 나의 실패담일까. 베를린을 시작으로 카미노 길을 두번 걷고, 중동을 횡단하고, 스리랑카와 인도를 거치며... 2년 동안 배낭하나만 매고 떠돌았다. 그 사이 나는 많이 바뀌었지만, 돌아온 이 곳은 여전했다. 여전히 사는 게 어렵고 사람들은 외롭고 먹고 살기 막막한 곳임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세계여행을 다녀와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 누군가의 인생 버킷리스트를 이루었지만, 엄청난 영광이나 명예도 훈장도 없다.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내 삶의 기록일 뿐.
‘3호선 버터플라이’의 〈스물아홉 문득〉이라는 노래를 듣고 울었던 것도 어느새 10년 전. 서른 여덟살의 나는 여섯권의 책을 냈고 고양이 두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럭저럭 번듯한 직업으로, 대한민국의 사회 구성원 1인으로 집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일 매일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뛰었었지, 아주 빠르게. 지금은 더 빨리 걸을 수 있어” 라는 노랫말처럼. 과거의 봉현은 지금의 봉현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해에는 개정판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산티아고 길로 떠났었다. 3번째 카미노 길이었다. 과거의 나를 추억하며 그때처럼 스케치북에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걸으리라, 마음 먹고 준비를 단단히 해갔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림을 단 한장도 그리지 못했다. 아니, 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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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의 나와 달리, 서른 일곱의 나는 그림을 그려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나 스스로 내가 이곳에 있음을 온전히 느끼며 그 순간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만했다. 그때는 내가 여기 있다고, 나 좀 알아달라고, 잘 살고 싶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끊임없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스물 몇 권의 스케치북 모든 페이지마다 내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지 않으면 다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워 끊임없이 나의 증거를 남겼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아무도 몰라줘도, 내 경험에 아무런 증거가 남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간절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나 자신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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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일곱의 나는 더 이상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잘 살고 싶고, 소중한 이들과 계속 함께 하고 싶다. 가끔 어딘가로 가더라도 그건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지금의 내게는 책임져야 할 것이 있고, 그것을 지켜낼 힘과 의지가 있으며, 도망치지 않을 용기가 있다.
지난 이야기를 돌아보려니 과거의 내가 너무 힘들게 살았던 것 같아 마음이 쓰라리기도 했지만, 조금은 능숙해져버린 삼십대의 내가 이제는 할 수 없는 순수함을 가졌었다. 청춘이라는 말이 싫었다. 청춘의 경험이라는 낭만적 단어로 포장되기엔 그때 그 시간은 너무나 힘들었고 동시에 정말 삶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임했었다. 그렇기에 ‘청춘을 빌어 세계여행이든, 무엇이든, 당신의 경험을 쌓아라’ 같은 조언은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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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는 어떤 한 사람의 청춘이나 무용담이 아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매순간 고민하고 행동하다보니 지금까지 흘러왔다. 이 책은 장기 여행을 추천하거나,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 지구 어디선가 자신의 시간을 꿋꿋히 지키고 있을 단 한 사람. 누군가의 곁에 늘 놓여있는 책이었으면 한다. 용기를 내야할 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외로울 때마다 찾아 읽는 대화의 페이지가 되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계속 읽는 그런 책이었으면 한다.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하며 이야기를 남긴다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00은 나의 증인이 되고, 나는 또 어딘가에서 00이 남긴 세상의 흔적에 신세를 지고 살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며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시기와 나이는 상관없이, 이 세상 모두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치열했던 순간과 반짝이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13년만에 지난 시절을 하나하나 곱씹은 덕분에 지금, 이곳에서, 계속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나처럼. 부디 당신도 ‘그럼에도’ 잘 살아가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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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제 첫 책의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오늘 레터의 글 속 저의 '떠나고' '돌아온'
그 사이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베를린, 유럽, 2번의 카미노,
이집트, 시리아, 네팔, 스리랑카, 인도...
13년 전보다 좀 더 내밀하고 더욱 솔직한,
저의 길고 긴 이야기를 읽어주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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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내는 레터의 제목만으로도,
정말 오늘 레터의 몇배 이상으로 길게 쓸 수 있을 만큼
지난 여행과 그 시절은... 정말 할 이야기가 많은데요.
책이 나오고 소식이 뜸했던 만큼,
첫번째 공식 행사입니다.
이번주 수요일 (5/21) 에
서울시 마포구 블루스프링하우스에서 북토크를 합니다.
그랜드마스터 클래스 X 김영사 X 봉현
신청은 김영사 출판사 인스타그램
(클릭하면 넘어갑니다)에서 받고 있지만,
당장 이틀 후이기에- 혹시 00님 오실 수 있다면...
제게 메일 답장, 혹은 디엠 주세요.
초대 목록에 올려두겠습니다 :)
늘 고맙습니다.
책 속에서, 혹은 수요일에 만나요!
/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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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집에서 경험하는 크고 안전한 기쁨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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