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동시에 감동하기를 반복하는 혼란 속에 빠져있다. 세상의 모든 이가 같은 마음이기를 바랐던 적은 없으나, 적어도 이해하고 싶었다. 각자의 이유가 있고 각자의 논리가 있을 터, 내가 옮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 있고, 내가 행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만 내가 경멸하는 종류의 사람이 내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건 내 안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요즘 느끼는 이 실망감과 분노, 답답함은 어쩔 수가 없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아니라고, 최소한 이러해야 하지 않냐며 화가 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적어도 지금만큼은 침묵하고 모른 척할 때가 아니지 않냐고,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과 소중한 것들이 전부 다 사라질 뻔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냐고. 울음이 터질 듯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솟아오른다.
그렇게 며칠, 자칫 우울과 냉소로 변할 것이 두려워 잠 못 든 채 눈을 부릅뜨고 분노가 가리키는 방향을 계속 바라봤다. 감정이 너무 커져서 넘쳐버린 탓에 온갖 사방으로 흘러 들어갔음을 깨닫는다.
나 또한 소리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쪽의 이야기를 듣고 한쪽으로 기울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나의 논리를 맹신하여 수많은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그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념이 고집으로 늙어버린 자는 낡고 썩은 예술가의 초상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 시대와 사람들에게 걸맞은 창작자이고 싶다. 세상에 이로운 것을,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만한 가치 있는 것을 남기고 싶다. 다만 내가 지금껏 해왔던 이야기들은 내 안에서 수없이 곱씹고 되내인 이후에야 꺼낸 이야기들이었다. 경험하고 행한 것이어야만 나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아끼고 곱씹으며 조용히 행동했던 때가 많았다. 어떠한들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그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 많다는 것을, 오직 자신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오만함에 타인을 걷어차는 짐승이 있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무언가를 지키려 하는 모습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후안무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모욕적인 무력함에 둘러싸여 나는 대체 뭘 할 수 있는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몰라 며칠 내내 좁은 집 안을 서성이기만 했다. 간신히 진정하고서 책상 앞에 앉아 해야 할 일을, 매일 그리기로 약속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자꾸만 터져 나오는 믿기지 않는 말과 뻔뻔한 얼굴들을 마주하고 펜을 잡은 채로 엉엉 울기도 했다.
물론 매일 매 순간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들과 곤히 낮잠을 자거나 맛있는 요리를 해먹고 달달한 디저트를 사 먹었다. 따뜻하고 예쁜 스웨터를 샀고 친구들과 모여 연말 인사와 선물도 나누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깔깔 웃으며 즐거운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자랑할 기분이 안 들었다. 오히려 그런 행복과 평화의 순간마다 무서운 공포감이 들었다. 나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모두 파괴당할 뻔했다.
지난주 토요일, 전날 밤 내가 제일 무서웠던 건 우습게도 겨울 날씨였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나는 몸이 찢어질 듯 아플 정도로 겨울 외출을 힘겨워 한다. 최소 다섯 여섯 시간은 밖에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옷을 다섯 겹 껴입고 핫팩 4개를 몸에 붙이고 목도리와 털 모자, 장갑까지 단단히 챙겼다. 과하다 싶을 만큼 두껍게 껴입고 단단히 맨 가방 속에는 응급약과 손난로, 먹을 것, 심지어 호신용 스프레이와 손전등, 몇 가지 재난 용품까지 들어있었다.
아무 일 없어 보이는 평소의 홍대 거리를 지나갔고, 지하철에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웃기게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당산역에 내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지만 그냥 사람들을 따라 같이 걸어가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0분 남짓을 걸어가는 동안 누구를 지키는지 알 수 없는 경찰들과,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성을 내뱉던 할아버지와, 가방에 알록달록하고 폭삭한 키링을 달고 가는 여자아이들을 만났다. 차가 쌩쌩 다녔을 4차선 도로에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국회의사당 역 어느 카페에 들어가 누군가의 선의를 통한 무료 커피를 감사히 마셨다. 커피를 마시니 더욱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릿수를 가늠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전광판에 나오는 뉴스를 지켜봤다. 그렇게 그날은 오후 네시부터 저녁 10시 넘어서까지 여의도에 있었다.
허탈한 뉴스를 끝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늦은 밤. 결국 버스가 오지 않아 걸어가야만 했다. 다 식어버린 핫팩은 소용이 없어 추위에 떨면서 우리는 오늘의 분노를 다시금 되새겼다. 그런데 집에서 느끼던 분노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 왼편에는 자신의 최애를 위해 흔들던 응원봉을 들고나온 스무 살 남짓의 여자 동생이, 오른편에는 우리 아빠와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가, 그 외에도 다양한 나이와 직업과 계층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한 뜻 한마음으로 구호를 외치고 소녀시대의 다만세를 부르며 반짝반짝… 가슴이 찡했어, 이상하리만치. 이걸 감동이라고 해야 할까 벅차다고 해야 할까.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짜증 나는 건 여전한데, 여기 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괜찮다고, 절대 꺾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달까. 나오길 정말 잘했어.”
서강대교 위로 불어오는 칼바람에도 꺼지지 않을 것처럼 내 안에 당신 안에 불꽃 같은 것이 타고 있다는, 촌스럽고 유치한 단어들로 깔깔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 무탈하게-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말도 안 되는 비 상식적인 일들이 계속되면서 화는 가라앉을 줄 몰랐지만, 그래도 나는 또 그곳에 갈 날을 기다리며 견뎠다. 밀린 빨래를 하고, 방을 쓸고 닦고 밥을 잘 챙겨 먹었다. 귀마개와 핫팩 한 박스를 샀다. 저번에 들고 갔던 라디오가 정말 큰 도움이 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친구들도 많이들 올 테고, 근처 사람들에게 나눠줄 간식도 넉넉히 챙겨가야지 생각하며 내일을 준비한다.
내일을 준비하는 일 중 제일 중요한 일은 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차마 용기가 없어, 감히 설득할 자신이, 당신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오만이 될까 봐,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 부디 이 글을 통해서라도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믿을 수 없이 잔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우리의 지금이 언젠가 역사가 되는 날, 우리가 함께 모여 불의를 거부하고 폭력에 반대하며 진심을 다해 분노했다고. 사랑하는 이들과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불태우는 이들 곁을 지켰다고. 추악한 욕망과 거짓말을 덮을 만큼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함께 노래했다고. 영원히 기억될 수백만 반짝이는 불빛들, 그 사이에 나 또한 바로 거기 있었다고.
꼭 우리 자랑스럽고 당당한 모습으로 2024년 12월을 돌아보자는, 그러니 우리 함께 나아가 빛을 밝히자는 말을 00에게 전한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