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포르투에서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봉현입니다.
잘 지냈어요?
저는 지금 유럽, 포르투갈 포르투에 있습니다.
사실 한국을 떠나온지는 꽤 되었는데요,
지난 번 메일에 쓴 것처럼 서울에서는
정말 정말 바쁘고 정신없이 보내며
일주일 전에 허리가 나가서 끙끙대고
심지어 출국 세시간 전까지도 일을 하다가...😂
어찌저찌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출국부터 비행까지
이런저런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며
목적지인 포르투에 도착했고,
어느새- 포르투에 지낸지 20일이 넘었어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레터도 안쓰고 인스타그램도 거의 안하면서
정말 현실의 삶, 당장의 여행,
지금을 충실히 누리면서 보냈어요.
포르투는 여행이라기보다 거의 여기 살다시피 보냈었어요.
그래서 더 특별하고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레터를 씁니다.
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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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면서 살고 싶다고, 어디서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이십대 중반 2년동안 배낭 하나만 매고 세계를 여행했던 때. 허물어진 방이든 삐걱이는 침대든,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낯선 맛의 식사와 모르는 언어, 다른 문화 뿐인 어떤 곳에서도-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 자유에는 늘 불안과 위험이 따랐다. 언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말은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야만 한다는 것과 같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부랴부랴 짐을 싸서 쫒기듯 나가야 했기도, 금새 지겨워지거나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적은 돈으로 삶을 꾸려나가려면 신경쓰고 아껴야할 것 투성이였다. 자유롭지만 외롭고 막막했다.
결국 나는 서울의 어느 집에 살림을 꾸려, 10년 넘게 한 곳에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다. 가끔 집을 둘러보면, 배낭 하나가 전부였던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을까 싶다.
그렇게 거주지를 두고 일년에 꼭 한번씩은 어디론가 떠났다. 비행기 값이 없어서 가지 못했던 먼 나라, 갔었지만 하고 싶었던 것을 제대로 못했던 도시들이었다. 파리와 뉴욕에 가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사치스럽게 보고 기념품도 샀다. 쿠바에서 올드카도 타고 카리브해에서 다이빙도 하고 모로코 사막에서 낙타도 타고 페루 마추픽추도 다녀왔다.
10개월을 열심히 살고, 1-2개월씩 여행을 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어디로도 떠나지 못했던 3년은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작년에도 이런 저런 일로 여행이 무산되었다.
서울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돈을 벌고 고양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꾸리며, 나의 하루를 하루하루 이어나가는 삶은 소중하지만 기간이 길어질 수록 점점 더 내 안의 무언가가 고갈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익숙하고 아늑한 평화. 하지만 점점 비어가는 속내. 점점 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그리고 싶은 것도 없어짐을 느끼며, 올해는 무슨일이 있어도 반드시 떠나야지, 하는 결심으로 돈을 모았다.
그렇게 포르투갈에 왔다. 일본과 헬싱키, 바르셀로나를 경유하는 긴긴 비행을 지나 드디어 포르투에 왔다.
포르투에는 고등학생 때 고향 친구가 이곳에 살고 있다. 오래된 유럽 특유의 집, 긴 복도로 이어진 맨 안쪽 빈 방에 신세지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최근에 허리에 문제가 생겨 배낭을 맬 수 없어 캐리어를 끌고 왔는데, 20kg에 육박하는 짐가방에서 옷가지와 잡다한 물건들을 꺼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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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일을 했다. 에세이가 아닌 외주 원고 몇 개와 오기 전에 마감한 표지 그림 수정, 포스터 디자인 작업 등. 심지어 스페인 출판사에서 그림 의뢰가 왔다. (논의 중이라 확정은 아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메일 업무와 연락을 나누었는데, 주로 집 바로 앞의 EARLY 라는 카페에서 일을 했다. 대문에서 나와 3초 거리, 모든 자리에 콘센트가 있고 나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여럿인 로컬 카페다.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하니 직원들과도 '또 왔네, 어서 와!' 하며 익숙해졌다. 매번 플랫 화이트를 시켜 창가에서 햇빛을 맞으며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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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던 루틴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를 정리하고, 물을 한 컵 마시고, 씻고 옷을 챙겨 입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을 했다. 캘린더를 체크하고, 오늘 할 일들을 적어두고 하나씩 차근차근 일을 했다. 다만 여기는 한국과 시차가 무려 9시간 차이나는 유럽. 회사 출근 시간에 맞춰 보내던 예약 메일은 다른 시간대로 설정해야 했고, 실시간 논의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느긋하게 계획하며 내 속도에 맞출 수 있었고, 무엇보다 오늘의 할 일을 다 하면 카메라를 들고 나가 하염없이 도시를 돌아다녔다. 오늘은 어디 골목을 걷다 거기 카페에 가볼까, 포르투가 공유 오피스가 그렇게 잘 되어있다던데 (*실제로 너무너무 좋았다.) 오늘 한번 가 볼까. 아 역시 익숙한 얼리가 편하려나, 집 책상도 창문 열어놓으면 좋지..
그렇게 정말로, 다시 한번 나는 그야말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구나 라고 느꼈다. 여행도 하고 일도 하고, 여행 경비 쓰는 만큼 또 벌어볼까, 어디로든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어디서도 일할 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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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여행 중에 필름 카메라를 썼다. 카메라 샵에서 흑백 필름을 사고 친구의 오래된 필카를 빌려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과 디카는 넣어두고, 한장 한장 신중하게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보니 그 어떤 여행 때보다 사진 기록이 적다. 20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하루에 휴대폰 사진 한장 없는 날도 있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다 겪어본 세대로 자라면서 어릴 때는 휴대폰 카메라는 커녕 디카도 생소했었다. 부모님이 남겨준 나의 유년 시절과 가족들과의 추억은 모두 낡은 종이에 인쇄된 필름 사진들이었다. 아빠가 물려준 캐논 카메라로 20살 때부터 사진을 공부하며 쓰기 시작했었고, 꽤 즐겁게, 열심히 찍었지만 점점 더 무겁고 불편한, 그리고 점점 더 비싸지는 필름 사진의 빈도는 줄어들고 간단하고 선명한 디지털 사진에 익숙해졌다.
기술의 발전은 편리하고 좋지만, 가끔 생각없이 낭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때마침 되돌아 온 레트로 유행, 필름 값은 점점 더 올라서, 필름 한장당 얼마인가를 계산해보면... 절대 헤프게 쓸 수가 없다. 오직 주어진 24장에서 36장 안에서. 한 프레임 한 순간을 고민하며 신중하게 찰칵. 바로 확인 할 수도 없기에 한 롤을 다 사용하고 인화하고 나서야 추억처럼 돌아볼 수 있다.
여행지에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찍은 필름을 포르투 현상소에 맡기고, 일주일만에 받아 본 사진은 정말 멋졌다. 한장 한장이 모두 특별했다. 수백개의 사진중에 잘 나온 것을 고르고 골라 보정하고 조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 자체가 완벽한 순간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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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보러 가는 목적의 뉴욕이나 파리를 제외하고는 한번 갔던 도시를 다시 가고 싶어하는 편은 아닌데, 포르투는 다시 오고 싶다. 아니 분명 또 올 거라는 확신이 든다. 자세하게 풀어낼 수 없을 만큼 여러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서 만나고 알게 된 친구들과 인연들이 너무 많아 (여행자는 나뿐이었다..) 매일 매일 바쁘게 약속이 있을 만큼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다.
스테이크 먹고 배탈나서 친구가 미역국 끓여준 미역국, 여동생들과 먹은 비건 파스타, 1일 1인 1나타 하며 테라스에 앉아 쬐던 햇빛, 여럿이 모여 열심히 몸을 움직여본 포르투 현지 클라이밍 센터 경험, 이민 온 부부 분들께 초대받아 방문한 집, 한식당에서 얻어 먹은 아침밥과 부활절 카스테라와 성당 미사, 친구가 퇴근하면 가게 앞에서 만나 맥주 한잔씩 하러 간 동네 로컬 바...
외로울 틈이 없었다. 난 분명히 혼자서 여행을 왔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귀했고 그때마다 공유 오피스나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거나 그림을 그렸다. 물론 나 또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라서 틈틈히 이어폰을 쓰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이번 여행의 BGM은 Bruno major와 오월오일 이었다.) 대성당을 지나 동 루이스 다리 강가 근처에서 버스킹도 보고, 골목 골목 예쁜 가게들도 구경하고 화방에 가서 미술용품도 구경하고- 발길 닿는데로 여기저기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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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이상하게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20일이 지나고 나니 이제서야 엇,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났지 싶다. 서울에서 힘들었던 마음을 다 잊고, 정말 즐겁게 일하고 놀고 쉬었다. 돌아보아도 포르투에서 나빴던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냥 모든 게 좋았어-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무엇보다 포르투는 정말 아름다웠다. 강가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매일 매일 색이 다르고, 다리를 가로지르는 트램의 불빛과 그 아래 가게 조명들이 어우러진 야경은 봐도 봐도 예뻤다. 사실 포르투에 온 초반에는 정말 정말 너무 추웠고, 중반 일주일 정도만 잠깐 날씨가 좋고 그 이후부터 오늘까지 매일 비오고 흐렸는데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와 구름, 그마저도 좋았다. 여기서 만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전부 다 '낭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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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ookwangyi
( 제 친구, 두광 작가님이 찍어준 사진!
포르투에서 스냅 찍을 분들께 추천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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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 아침이면 포르투를 떠난다. 이 레터를 마무리하면 집에 (아늑한 포르투 내 방)가서 다시 옷을 정리하고 배낭을 싸야 한다. 한국으로 가는 것은 아니고,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지를 향해 간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힘든 여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상관없을 만큼 나에게 정말 정말 특별한 곳으로 간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나 다름없었던, 13년 전의 그곳으로.
어느새 포르투에 살아보기 마지막 날이다.
고마워 포르투, 곧 다시 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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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님은 포르투에 와보셨나요? 혹은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듯 여행하신 적이 있나요? 있다면 그때를 돌아보길, 아직 없었다면 꼭 한번 그런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라며 레터를 썼습니다.
저는 내일 (포르투 시간으로) 다시 길을 떠납니다. 아이패드를 친구집에 맡겨두고 가볍게(?) 떠나요. 앞으로의 여정은 더 특별하게 기록하고 남겨올 결심을 하고 있는데요. 예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고.. 정확히 어디로 가는 지는 곧...😉 (기대해도 좋아요! 저도.. 떨리고 기대되네요..)
그 길 위에서 다시 안부 전할게요. 고맙습니다.
/봉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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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집에서 경험하는 크고 안전한 기쁨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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