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 SPHERE] 전시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들
안녕하세요 봉현입니다.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시나요?
(2월 중순이라니! 2024년이 두 달 가까이 지났다니!!)
저는 이번 주 수요일, 전시를 오픈했습니다.
그간 정말…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최대치로 최선을 다해 작업에 몰두해왔어요.
드디어! 무사히 전시를 오픈하고 나니,
묘-한 기분입니다. 🙂
오늘 전시장 바에 앉아 00님에게
전시 소식과 근황, 안부를 전하는 편지를 씁니다.
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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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동료들과 작업실을 열고 우리에게 <NOTS>라는 이름을 지어주자마자, 갤러리에서 제안을 받아 두 달 만에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기획, 빠듯한 일정이었던 만큼 고민이 많았다.
어떤 것을 그려야 할까. 아니, 단순히 그림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을까. ‘Not silly, Not serious’라는 문장처럼, 너무 유치하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않아야 했다. 자칫 자신만의 감상에 빠지거나 유행처럼 가벼운 작업은 피하고 싶었다. 예술이라는 뻔한 단어, 나는 그 단어를 평생 아끼며 짝사랑해왔다. 이제는 그걸 나의 방식으로 구현해낼 때가 왔다.
이런저런, 멋들어지거나 그럴싸한 에스키스를 짜보다가 엎어버리길 여러 번. 아닌데,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잠 못 들던 밤. 문득 2021년의 잠 못 들던 그날이 떠올랐다. 두둥실 떠오르듯 내게 찾아왔던 어떤 이야기. Mia,라는 이름의 아름답고 쓸쓸하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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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션에서 ‘미아‘를 검색하고 그때 적어둔 초안을 몇 년 만에 다시 열어보았다. 그래, 이거다.
[그림에도 삶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라고 늘 되뇐다.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지만 첫 회화 작업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그럴싸한 작업을 계속 떠올려봤지만, 결국 허상처럼 유치하거나 지나치게 진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림이든 글이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의 본질은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심연에서 태어났다.” 모든 인간은 동일하게 시작된다. 인종, 성별, 장애, 출신…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이 동일한 구체에서 똑같이 탄생하여, 알을 깨고 나와 각자의 세계로 향한다. 그 중, 가운데 원 속에 잠들어 있는 미아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이다.]
미아의 심연 / Birth Sphere,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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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미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고민과 구상이 끝나자마자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리고 만들었다. 내 키만 한 커다란 캔버스에 흰색과 검은색 물감을 계속 칠했다. 아크릴 물감이 그라데이션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몰랐고… 수십 번을 칠하고 다시 칠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 발목이 퉁퉁 부을 정도로 서서 그림을 그렸다.
조형물을 만들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사이즈의 ‘미아’를 눈 코 입, 손가락 발가락까지 스컬피로 세심하게 조각하고 오븐에 구워 굳힌 뒤, 실리콘 몰드로 틀을 만들고 여러 종류를 레진으로 캐스팅했다. 피규어 같은 것을 제대로 만져본 적도, 당연히 만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너무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처음 다뤄보는 재료들이었기에 공부에 또 공부를 해야 했다. 수많은 테스트를 했고 수없이 실패하고 수없이 반복했다. 무엇보다 ‘투명한 구 가운데에 미아를 넣는‘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한 형태가, 사실 너무너무너무 어렵고 (그야말로) 곤란한 작업이었다. 25cm의 완벽한 유리구를 구하는 것부터가 힘들었고, 크리스탈 레진을 그 두께로 굳히려면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았으며, 약품의 믹스나 경화 시간에 따라 깨어지거나 터지거나 기포가 생기거나.. 예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한가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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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주. 거의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면서 작업실에서 퇴근했다. 온몸이 아프고 잠이 부족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작업을 부여잡고 매일 매 순간 나를 다독이며 이어나가야 했다. 문득문득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마음을 눌러가며. 정말로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지 않으면 이걸 할 에너지가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2월 7일, 그리고 2월 8일. 전시장에 무사히 그림과 조형을 설치했다. 그리고 느껴졌다. 성장했음을.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 버벅대던 내가 결국은 해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계속 이런 것들을 하고 싶다.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계속 그리고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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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갤러리 아미디 전시장에서 - 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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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업 기간에 문득 불안해져 정신 의학과에 다녀왔다. 처음이었다. 초진을 예약하고, 30분가량 긴 질문지를 작성하고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요즘 이러저러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그리고 선생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만, 지금 느끼는 불안감과 피로함은 단순한 이유라고 했다. 사람은 일과 휴식, 식사, 수면, 관계 등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데- 나는 그저 잠이 부족한 것뿐이라고. 그냥 바쁜 시기를 지나고 나서 잘 쉬고 잘 자면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운동하고 (ㅎㅎ) 잘 챙겨 먹고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라고. (정말 단순하지만 제일 어려운 건강의 진리...)
후련했다. 스스로 잘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확인했음이, 좋았고 안심됐다. 몸이 아픈 곳은 없는지 건강검진을 받듯, 정신적으로도 정기 검진을 받으면 좋겠다고 느꼈고, 종종 불안함이 느껴지면 가볍게 병원에 들려 나를 체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디선가 이런 대화를 본 적이 있다.
‘네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 하지만 10년 정도가 지나서도 그걸 하고 있다면 알게 되겠지.’
작가로 일한지 어느덧 10년, 하고도 2년. 창작하는 마음과 태도는 20년 남짓. 이것이 재능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도, 나는 여전히 이걸 하고 있다. 지금은,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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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
미아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눈을 떴다.
그곳은 사막같기도 했고,
달 같기도 했고 심해같기도 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mia,
미아라고 적힌 이름표 하나.
미아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곳은 아무런 이정표도 표식도 없었기 때문에
방향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종이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빈 종이였다.
아무것도 적혀있지도 그려있지도 않은 하얀 종이.
종이를 들고 계속 걸어갔다.
가다보니 또 종이가 있었고, 또 종이가 있었다.
미아는 종이를 여러개 모아 박스를 만들었다.
박스 안에서 원 하나가 태어났다.
미아는 조심스럽게 원을 끌어안고 어루만졌다.
원은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따뜻했고,
미아는 그 원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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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이야기는 전시장에서
9분 가량의 낭독을 통해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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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illy,Not serious Workroom
< MONO SPHERE > 전시 / 공연
갤러리 아미디 한남
2024.02.07 - 2024.02.18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27가길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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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1시~저녁 8시, 관람 상시 무료
(*저는 11일 일요일 종일, 13일 화요일 오후에 전시장에 상주합니다. 그 외에도 종종 들릴 예정이고, 혹 오시게 되면 미리 인스타그램 디엠주세요! 최대한 가보겠습니다.)
● 2/17 NOTS DAY 아티스트 토크 + 뮤지션 '나루'의 축하공연
● 2/18 호세 + 시원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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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현읽기 EVENT]
구독자 분들중 17일 아티스트 토크+ 공연에
2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오시고 싶으신 분들은
인스타그램에 저를 태그하시고 기대평을 남겨주세요 🌚
추첨을 통해 초대권을 보내드립니다!
*개별 연락/ 현장 확인
저와 함께 하는 동료들의 멋진 작품들도 가득한,
전시장에서 만나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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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집에서 경험하는 크고 안전한 기쁨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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