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세이 + <SNS를 지우고 산 이야기> 후일담, 채널예스 3월호
안녕하세요, 00님!
점점 날이 따뜻해지는 거 보니
정말로 봄이 머지 않은 거 같아요. 🌱
계절은 바뀌는데, 세상은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요즘이죠?
어딜 가기도 누굴 만나기도 망설여지는 시절이다보니
점점 혼자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오래, 깊이. 계속 생각해야만 하는 것 같아요.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의 개념을 깨부시고 정비하기를
여러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고, 세상은 엉망진창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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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글은, 앞서 두개의 글을 먼저 읽고 난 뒤
읽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1번 글은 이미 레터로 받아보셨던,
1월 말에 보내드린 그 화제의(?) 43번 글!
일주일 동안 SNS를 지우고 산 이야기
<어두운 터널 속에서>를 기억하시나요?
그 글에 이어지는 후일담, 2번 글은
이번 3월호 채널예스에 실린
<인생은 아이러니한 균형잡기>입니다.
(채널예스 3월호는 YES24 서점에서 2만원 이상 구입시
사은품으로 종이 잡지로도 받아보실 수 있어요!)
금요일 밤이네요. 뭐하고 계신가요?
이 레터를 읽고 나면, 잠시 휴대폰을 멀리 두고
00님만의 '혼자'를 보내보시길 바랄게요.
저는 또 조만간 편지를 쓸게요.
늘 고맙습니다 :)
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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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3월호 <인생은 아이러니한 균형잡기> |
SNS를 지웠다, 라는 글을 쓴 이후로 약 2달 정도 시간이 지났다. 그간 여러 사건과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트위터 팔로워와 뉴스레터 구독자가 엄청 늘었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는 재발송을 3번 했으며 가장 많은 오픈율을 기록했다. 채널 예스 3월호에 이와 관련한 특집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SNS와 삶의 경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트위터를 무려 11년, 인스타그램은 10년을 하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이틀 이상 SNS를 보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친구들의 안부, 사람들과의 소통, 작가로서의 홍보 수단, 다른 콘텐츠와 뉴스 소식.. 요즘의 유행과 문화적 공유 등을 매일 했다. SNS의 장점은 끝도 없다. 매 순간 셀 수 없이 새로운 소식이 올라오고, 1초 만에 지구 반대편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마치 마법 아니, 거짓말처럼.
완벽한 장점은 완전한 단점이기도 했다. 궁금하지 않은 사람의 소식, 마음의 준비 없이 밀려오는 일방적 소통, 끊임없이 나를 알려야 한다는 압박감, 나만 빼고 다들 이룬 것 같은 성공과 성취,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계속 쫓아가도 영원히 쫓기는 듯한 기분… 피로감은 천천히 축척되어 갔다. 티 나지 않지만 분명하게, 태생을 짐작도 할 수 없는 기묘한 모습과 어마어마한 덩치로.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는 SNS를 지워버렸던 것이다.
그 이후로 확실히 정신 상태와 일상의 흐름이 달라졌다. SNS는 필요하거나 심심할 때만 잠시 깔아서 보고 다시 지운다. 휴대폰은 연락 수단과 시계의 역할에 충실해졌다. 친구들의 근황도 SNS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안부 전화를 통해 대화를 했고, 메모를 많이 하게 되었으며, 독서량이 늘고, 청소와 정리를 자주 해서 집이 쾌적해졌다. 혼자의 시간이 더 길어졌는데도 외롭거나 소외된 듯한 기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말은 줄고, 고민이 아닌 사색의 순간들이 길어졌다. 말을 줄이는 것은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SNS에 쓰는 말은 순간의 감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바로 써갈겨서 업로드 하지 않고 일단 휴대폰 메모장에 쓴다. 몇일이든 몇시간이든, 일단 묵혀뒀다가 다시 생각이 나면 꺼내서 읽어본다. 대부분의 말은 어설프거나 지나치다. 다시 읽어보고 다시 쓰는 그 과정에서부터 말은 글이 된다. 다른 입장에서 매의 눈으로 바라보거나 시니컬하게 흐린 눈으로도 읽어본다. 넘치게 감정적인 부분은 적당하게 배제하고, 앞뒤 맥락을 찾고 그 중간의 구심점을 더해가면서 다시 고쳐쓴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그렇게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요즘 어떤 상태인지, 진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그제서야 알 수 있다.
어찌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내 나름의 자기 검열처럼 피곤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방식이 썩 마음에 든다. 이제는 와르르륵 쏟아낸 내 자아가 어설프게 흩어진 꼴을 보고 싶지가 않다. 무엇보다 타인의 판단에 휘둘리고 싶지 않고 동시에 자기 안에 고여버린 꼰대가 되고 싶지도 않기에, 나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외부의 시선 앞에 내보이기 전에 한 발 앞선, 셀프 검열이 더 깨끗하고 긴 바늘이 되어 나를 향한다. 가늘고 깊기에 자칫 찢어지고 상처입더라도 회복이 빠르고, 흉터없이 아물어 오히려 더 단단한 표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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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알 필요도,
모두와 잘 지낼 필요도,
내 모든 것을 다 내보일 필요도 없다.
삶 전체를 SNS에 담아낼 수는 없다.
SNS가 없다고 해서 삶이 사라지지 않고,
SNS를 한다고 해서
삶이 불완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아이러니한 균형 잡기니까.
/ 채널예스 3월호 <인생은 아이러니한 균형잡기> -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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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도 쓴 것처럼,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세상의 흐름은 종체 종잡을 수가 없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너무 많고, 넘쳐나는 혐오의 구렁텅이가 여기저기 고여있는 것을 볼 때마다 분노와 절망이 일지만, 그럴 수록 더 단순하고 평범한 것들을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빌기, 동물들을 사랑하기, 식물을 돌보고 집을 정돈하기, 열심히 일하고 좋은 것에 돈을 쓰기.. 그런 시간을 통해 느끼는 것들을 글로 남긴다.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도, 모든 걸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더 잘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지닌 기분이 든다.
사실 최근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더 확실하게 깨닫고 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다보면, 그럭저럭 다 괜찮아진다는 것. 내 의심과 달리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고, 내 기대만큼 놀라운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나는 강한 사람이다. 그 감각은 차분함과 성실함에서 나오고, 그 영향은 사랑의 형태로 주위 사람들에게 확대 될거라 믿는 게, 나의 원동력이다.
잊지 말자. 00은 네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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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행운의 저울 위에서
지침이 평행을 이루는 순간은 드물다.
그대는 비상하지 않으면 곤두박질 쳐야 하고,
승리하여 지배하거나
패배하여 복종할 수 밖에 없으니,
고통을 겪거나 승리에 취하고
모루가 아니면 망치가 돼야 한다.
괴테 Goe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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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00님,
오늘 제가 00님에게 말한 마지막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말로 하거나 글로 쓰는 건,
그냥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울림이 있을 거예요.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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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집에서 경험하는 크고 안전한 기쁨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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