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침실엔 인형이 하나 있다.
이 하얀 강아지 인형은 ‘틴틴의 모험’에 나오는 밀루 캐릭터다. 친구들과 ‘누구나 애착 인형 하나쯤 있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없다는 말에 생일 선물로 받았는데, 인스타그램에서 투표를 통해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따온 ‘조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건, 조엘이 아니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건 ‘포레스트’ 다. 맞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이름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나열하자면 라이프 오브 파이, 이터널 선샤인, 허, 빅피쉬… 등등 끝도 없지만, 단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포레스트 검프”를 꼽는다. 1994년 톰 행크스 주연의 오래된 명작. 이 영화는 깃털 하나가 하늘을 날다가 버스 정류장에 앉은 누군가의 발치에 떨어지면서 시작된다. 그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 포레스트, 포레스트 검프. 그는 옆에 앉은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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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는 늘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신발을 보면 어떤 사람인 줄 알 수 있다고, 바보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지 자신은 그냥 지능이 조금 떨어질 뿐이라고, 엄마가 해준 말들을 생각한다.
아이큐도 낮고 허리가 굽어 다리가 불편했던 소년은 계속 달리라는 제니의 말에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재능을 깨닫는다. 그냥 달리다가 대학에서 미식축구를 하게 되고, 누가 시켜서 해봤을 뿐인데 국가대표 탁구 선수가 되기도 한다. 군대에서 만난 친구와 스치듯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우잡이 배를 탔다가 엄청난 부를 쌓게 되고, 전쟁에서 생명을 구해줬지만 다리를 잃어 피폐한 삶을 살던 댄 중위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처음으로 버스 옆자리를 내어준 제니를 만난 첫 순간부터 평생 동안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 기구한 삶을 살던 제니 또한 포레스트로 인해 행복한 삶을 잠시나마 경험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포레스트 같은 사람이고 싶어진다. 그는 단순하다. 지능이 떨어져서 눈치가 없고 생각이 짧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단순함은 언제나 순수한 진심이기도 하다.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약속했기에 약속을 지키고, 사랑을 느끼기에 사랑한다. 마음이 시키는 데로 행동하고 삶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래서일까. 포레스트는 정말 다양한 삶을 경험한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제니가 갑자기 말도 없이 떠난 날로부터 시작된다. 집 앞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달리기 시작하더니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작정 달린다. 그는 여러 마을과 도시, 바다, 사막을 건너-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와 석양 등을 본다. 사람들은 달리는 포레스트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뛰고 있느냐고. 그냥 뛰고 싶으니까 뛰는 거라고 아무리 말해도, 자아 성찰, 세계 평화, 인류 평등 등 분명 대단한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를 위대한 인물로 추종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데로 믿고 영감을 받으면서, 각기 다른 삶의 계기와 깨달음을 마주한다.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포레스트는 단 한 번도 그런 걸 의도한 적이 없다. 그는 그냥 자신의 삶을 살 뿐이다. 주어진 것을 성실하게 하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해 나가는 것. 명예, 성공, 돈, 그런 게 아닌 우정, 사랑, 시간, 행복 같은 것에 더 집중한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어떤 순간도 쉽게 지나치지 않는 동시에 과거는 흘려보낸다. 그렇게 수많은 우연은 마치 운명인 것처럼 이상하리만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포레스트에게는 늘 운이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건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뿐이다.